취미생활/한시감상

黃鶴樓(황학루) / 崔顥(최호)

德川 2019. 6. 3. 14:31

            

              黃鶴樓(황학루)                                  황학루에서                        

 

              昔人已乘黃鶴去(석인이승황학거)              옛 사람은 이미 황학 타고 떠났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곳엔 황학루만 남아있네

              黃鶴一去不復返(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 번 가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고,

              白雲千載空悠悠(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천년 동안 하릴없이 떠돈다.

              晴川歷歷漢陽樹(청천력력한양수)              맑은 날 강 건너 한양나무들 또렷한데

              芳草萋萋鸚鵡洲(방초처처앵무주)              싱그러운 풀밭은 앵무새 섬을 덮고 있다.

              日暮鄕關何處是(일모향관하처시)              해가 저무는데 우리 고향 어디쯤 있을까,

              煙波江上使人愁(연파강상사인수)              물안개 강 위에 피어올라 나는 시름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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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崔顥 : 최호(?-754년 졸)는 하남성 開封 사람이다. 723년 진사에 급제하여 司勳員外郞(사훈원외랑)을 지냈다.

전기 시는 閨情(규정)을 많이 짓고 표현이 경박하였으나, 후기에는 邊塞(변새)를 겪어 시풍이 웅혼 분방한 것으로 바뀌었다. 최호는 武昌(무창)에 놀러갔다가 황학루에 올라 이 절창을 이루었다. 전하는 말에, 李白도 황학루에 올라 시를 지으려 하다가 최호의 이 시를 보고, "눈앞에 경치 있어도 말할 수 없으니, 최호 읊은 노래가 위에 있기 때문이라.(眼前有景道不得, 崔顥題詩在上頭)"고 탄식했다 한다. 송 嚴羽(엄우)는 『창랑시화』에서, "당인 7언 율시 가운데 최호의 <황학루>가 첫째다."라 하였다.

 

- 黃鶴樓 : 황학루는 무창에 있는데, 長江과 漢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황학루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辛씨 주점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술을 좀 얻어 마시자고 했으므로 주인은 큰 사발로 대접했다. 이러기를 반년간, 주인은 조금도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고 그냥 마시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은 주인에게 술값이 많이 밀렸지만 돈이 없다고 하면서 대신에 주점의 벽에 노란 두루미를 그려 주고는  떠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술을 마시러 온 손님들이 박자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면 벽의 두루미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소문이 나서 주점은 크게 번창했다. 10년쯤 되자 신씨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슬며시 나타났다. 피리를 꺼내어 부니 흰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노란 두루미가 벽에서 튀어 나왔다. 그 사람은 두루미의 등에 걸터앉아 구름을 타고 날아갔다. 그 사람은 신선이었던 것이다. 신씨는 그곳에 누각을 세우고 황학루라고 이름 지어 이것을 기념했다.

 

- 漢陽 : 한수가 장강과 합류하는 곳에 강을 끼고 세 도시가 발전하다가 1949년에 행정구획상 武漢시 하나로 통합됐다. 한양은 한수 남쪽과 장강 서북쪽 사이, 漢口는 한수 북쪽과 장강 서북쪽 사이, 武昌은 장강 동남쪽에 있고 황학루는 무창에 있다.

 

- 앵무새 섬 : 한양 서남쪽 장강에 있는 섬. 전설에 의하면, 후한 말 江夏 태수 黃祖의 큰아들이 이 섬에서 잔치를 베풀었을 때 앵무새를 바치는 이가 있어 이를 두고 禰衡(예형)이 鸚鵡賦(앵무부)를 지었으므로 이내 섬 이름이 되었다 한다.예형은 황조에게 살해되어 이 섬에 묻혔다고 소설 『삼국지』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