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동 . 2 - 영화 밖
- 이경림 -
길은 날마다 수 십 갈래로 내 앞에 드러누웠다.
산 밑 불빛 희미한 재건학교로 가는 길은 어둡고
공동 수도에는 입 벌린 물통들이 장사진을 쳤다.
물통을 지고 산을 오르면 발이 잘 맞지 않아
물은 울컥 울컥 토하고
가늘게 이어졌다 끊어지는 길
휘파람처럼 십구공탄의 구멍 사이로 자꾸 바람이 샜다.
아궁이에는 곰팡이 꽃이 만발하고
이질에 걸린 아이가 마알갛게 눈을 뜨고 죽어갔다.
비가 오고 무덤 사이를 파고 드는
빗방울들의 소리가 창호지를 찢었다.
절망은 마른 장작처럼 불타올라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쬐면
거짓말처럼 몸이 녹았다.
아 날마다 어둠이 폭설로 내려 내 발목을 덮었다.
나는 어둠에 지워진 길을 더듬어 극장에 갔다.
영화 속에는 굵고 실한 길 위에
근심없는 사람들의 웃음이 굴러 다니고
불빛 환한 집들이 우뚝 우뚝 솟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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