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우(春雨) - 봄비
정몽주(鄭夢周)
春雨細不滴/ 춘우세불적
방울도 짓지 못하는 가녀린 봄비가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밤새 가느다란 소리로 들리더니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눈 녹은 남쪽 시냇물 불어나서
草芽多少生/초이다소생
새싹들이 많이도 돋아나겠네
<한시 한자 풀이>
부적(不滴) ; 적(滴)은 물방울. 물방울을 이루지 못함.
창(漲) ; 물이 불어 범람함.
초아(草芽) ; 풀의 새싹.
다소(多少) ; 꽤나, 적지 않게 많이.
<시심 산책>
스프레이를 뿌린 듯 봄비가 사각사각 내렸다.
물방울도 못 맺고, 속옷 젖는 줄 모르게 내린 비.
밤중에 누웠자니 낮에 못 듣던 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 대체 모슨 소리일까?
밤들어 빗발이 더 굵어졌나?
아니면 겨우내 흐름을 멈추었던 남쪽 시내에 눈 녹은 물이 흘러가는 소리?
굳이 따질 것 없다.
그것은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만물들이 꿈틀 소생하는 소리.
사뿐 사뿐 봄비에 땅이 녹아 기지개 켜는 소리.
아 ! 잘 잤다. 이제 땅위로 올라가 볼까? 하는 소리다.
내 몸에도 더운 피가 돌고, 얼음장 밑으론 시냇물이 돌고, 굳은 땅 비집고 새싹이 올라온다.
깊은 밤 홀로 깨어 듣는 이 소리가 이리 고맙다.
<작가 소개>
정몽주[鄭夢周, 1337(충숙왕 복위 6)~1392(공양왕 4)]는 고려말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달가(達可)이고, 호는 포은(圃隱)이다. 공민왕 때 성균관의 교관으로서 경전 해석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면서부터 학문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이 때 성균관을 책임지고 있던 이색은 정몽주를 칭찬하여 '우리 나라 성리학의 시조'[東方理學之祖]라고 추켜세웠다고 하는데, 이 말이 조선 시대에 정몽주를 기리는 호칭으로 굳어지게된다. 우왕 때 정몽주는 특히 명과 일본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어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또 이성계 휘하에서 왜구와 여진 토벌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이 인연으로 위화도 회군 이후 정몽주는 정치적인 실력자 중 한 사람으로 부상하였다. 이 때 그는 5부학당과 향교를 세우고 『주자가례』에 따라 집집마다 사당을 만들게 하여 유학을 진흥하였으며, 새 법률을 제정하고 의창(義倉)을 세우며 수령 선발 방식을 개선하는 등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유교적 이상 정치의 실현에 애썼다.
그가 이성계를 축출하려다가 이방원에 의해 피살됨으로써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不事二君]는 절의(節義)의 표상이 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몽주는 피살된 지 9년만인 1401년(태종 1)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에 봉해졌다. 정몽주의 문집인 『포은집』에 성리학적 주제를 본격적으로 천착한 논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많은 시와 논술을 통해 일관되게 불교를 비판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교에 대비되는 유학의 사상적 특징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송대 신유학의 학문적 목표 중 하나가 불교에 대한 대응 이론의 정립이었음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정몽주의 사상적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글로는, 「호중관어」(湖中觀魚, 연못에서 물고기를 보다)·「호연권자」(浩然卷子, 호연의 책에 쓰다)·「동지음」(冬至吟)·「독역」(讀易)·「척약재명」(惕若齋銘) 등이 있다.
[출처] [소암] 봄비 - 정몽주|작성자 소암/詩心散策 /茶香亭/2016.05.15. http://blog.naver.com/so_am/220710076549에서 발췌하고 [네이버 지식백과] 정몽주 (조선 전기 이기론, 200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작가소개를 발췌함.
[출처] 春雨 - 鄭 夢周(高麗)|작성자 평온한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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