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명시감상

[스크랩] 학/서정주

德川 2017. 12. 9. 08:16




             서정주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날은다

천년을 보던 눈이
천년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 한번 천애에 맞부딧노나

산 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선이,
보라, 옥빛, 꼭두선이,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은 보자

누이의 어깨너머
누이의 수틀 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은 보자

울음은 해일
아니면 크나큰 제사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 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 죽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 땐들 골라 못 추랴

긴 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날은다.



출처 : 붓장난
글쓴이 : 덕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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