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작가 소개> 조지훈 趙芝薰 [1920.12.3~1968.5.17] 본명 동탁(東卓). 경북 영양(英陽) 출생.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惠化專門)을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 《승무(僧舞)》,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19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이다. 1962년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요점 정리> 성격 : 고백적, 상징적, 낭만적, 무속적 어조 : 버림받은 신부의 천년 한을 지닌 하소연의 어조 구성 : ①기다리는 돌문 (1연) ②슬픈 영혼의 모습 (2연) ③눈물과 한숨 (3연) ④티끌로 사라짐 (4연) ⑤원한이 사무친 돌문 (5연) 제재 : 버림받은 신부의 하소연 주제 : 풀리지 않는 원한(怨恨)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의 소재는 경북 영양 일월산에 있는 황씨 부인당의 전설이다. 전설에 의하면, 일원산에 살던 황씨 처녀가 자신을 좋아하던 마을의 두 총각 중에서 한 명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날 밤 잠을 자기 전에, 신랑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신방 문에 비친 칼그림자가 비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신랑은 자신의 연적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고 그대로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마당의 대나무의 그림자였다. 신부는 원삼과 족두리도 벗지 않은 채 신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한을 안고 죽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신랑은 몹시 뉘우치면서 그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일원산에 부인당을 지었다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바로 원한을 품은 채 죽은 신부이다. 그녀는 '당신'이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꺼지지 않을 촛불'을 준비하고, 천 년을 기다려서라도 '당신'을 만나야지만 '원한'이 풀릴 것이며, 그 때에서야 비로소 '티끌로 사라지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돌문이 열리는' 것은 원한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화자는 지극 정성이 아니면 돌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그녀의 원한이 너무도 사무쳐서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죽하면 마지막 연에서 '당신'도 자신처럼 '다시 천 년을 앉아 기다리'기 전에는 돌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는가. 결국 이 시는 설화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한 여인의 풀 수 없는 한의 정서를 고백적으로 표현한 산문시라 하겠다. 이 작품 외에도 첫날밤 도망간 신랑을 기다리며 한을 품고 죽은 신부의 설화를 소재로 삼은 작품에는 서정주의 <신부>가 있다.>>
<참고 자료> 청록파 시인들의 자연관 : 박두진,조지훈,박목월이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1946)의 시들은 대부분 일제 말기에 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들은 어떤 질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시집의 발간으로 이 세 시인을 '청록파'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들이 <청록집>에서 보여 준 공통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은'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을 통해 가혹한 시대를 견디려는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통 시가에서 흔히 조화로운 이상 세계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지향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지닌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적 지향이나 표현의 기교면에서는 서로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즉, 조지훈의 경우는 회고적,민속적인 제재를 통해 민족적 정서와 전통에 대한 향수 및 불교적 선미(禪味)를 그려 낸 데 비해, 박목월은 향토성이 짙은 토속적인 언어, 정형적인 율격, 간결한 이미지와 섬세한 서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박두진은 기독교적 생명 사상에 입각한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였던 것이다
청록파 시인의 시세계 : 1939년 이후 문장을 통하여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온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은 해방 후 함께 합동 시집 '청록집'을 냄으로써 '청록파' 또는 '3가 시인' '자연파'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들의 주요 관심은 자연이었다.
보충 자료 - 청록파의 작품 경향과 문학사적 의의 1) 시풍 동양적인 선관(禪觀)를 보여 줌 를 보여줌. 기독교적인 자연관을 지님 관(情觀)를 보여 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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