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稹
元稹(779~831)의 자는 微之로, 洛陽人이다. 白居易와 나란히 ‘元白’으로 불린다. 白居易의 명문장인 <與元九書>는 元稹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 글이다. 元稹은 白居易와 함께 ‘新樂府’ 운동을 제창하였다.
元稹은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서 성장했고, 15세인 德宗 貞元 9년에 급제하여 校書郞이 되었다.
원진은 艶詩(사랑과 그리움을 읊은 시)와 悼亡詩(망자를 애도하는 시)에도 능했는데, 여성편력 또한 많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첫 아내인 崔鶯鶯을 버리고, 당시 권력가였던 工部尙書인 韋夏卿의 딸 韋蕙叢(당시 20세)과 결혼하였다.
그의 여성 편력은 이미 당나라 제일의 여류 시인 薛濤와 주고받은 연서를 통해서 엿본 바 있다.
명문 권세가의 딸인 韋蕙叢은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元稹은 河南에서 관직생활을 하느라 장례에 참여할 수가 없어서 매우 가슴아파했다고 전해진다. 죽은 아내를 그리는 시 세 수를 썼는데 ‘悼亡詩’로서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遣悲懷(一). 슬픈 회포를 보내다.
謝公最小偏憐女, 自嫁黔婁百事乖.
顧我無衣搜藎篋, 泥他沽酒拔金釵.
野蔬充膳甘長藿, 落葉添薪仰古槐.
今日俸錢過十萬, 與君營奠復營齋.
*藎篋(신협); 반지꼬리. *釵; 비녀 채. *藿; 콩 잎 곽. *俸;녹 봉.
*奠; 제사 지낼 전. *齋; 齋戒의 준 말.
謝公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어린 딸,
黔婁에게 시집 온 뒤로 모든 것이 어긋났지.
내가 옷 없다고 하면 자신의 옷상자를 뒤졌고,
술 마시고 싶다고 조르면 금비녀를 뽑았었지.
나물로 반찬 만들고 센 콩잎도 맛있다 했고,
낙엽으로 땔감을 대신하며 오래된 홰나무를 쳐다보았지.
이젠 나의 녹봉이 십만 전이 넘는데도,
그대를 위해 제수 차리고 齋만 올릴 뿐이네.
여기서 ‘謝公’은 동진의 명사인 謝安을 지칭한 것으로, 자기 아내가 대단한 명사의 딸이란 것을 표현한 것이고, ‘黔婁’는 춘추시대 齊 나라의 가난했으나 명성이 있던 ‘高貧士’를 인용하여 자신이 黔婁와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元稹은 이 시에서 “당신은 나에게 헌신하느라 옷을 팔고 금비녀도 뽑아주었다는 구체적 사례를 들었고, 요리와 음식, 땔감을 위해서 그토록 고생만 했는데, 살만하니 세상을 떴다”고 애도하고 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고생만 시킨 아내의 타계를 애도하는 다를 바 없는 감정 표현이다.
遣悲懷(二)
昔日戱言身後意, 今朝都到眼前來.
衣裳已施行看盡, 針線猶存未忍開.
尙想舊情憐婢僕, 也曾因夢送錢財.
誠知此恨人人有, 貧賤夫妻百事哀.
옛날 우리 중 하나가 먼저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농하곤 했는데,
오늘 그것이 현실이 되어 당신이 내 앞에 먼저 갔소.
당신의 옷은 친했던 사람들에게 주어 거의 다 없어졌으나,
매일 쓰던 반지꼬리는 차마 열 수 없어 그대로 있다오.
친절했던 당신의 마음씨를 생각하면 하인들이 더 안쓰럽고,
당신을 꿈에서 만나고는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준다오.
이제야 아내 잃은 슬픔이 사람마다 같음을 알게 되었고,
당신에게 고생만 시킨 모든 일이 슬픔을 더하고 있다오.
一首에서는 생활의 어려움, 즉 ‘百事乖’(만사가 어렵고 어그러진다.)를 묘사하였지만 二首에서는 ‘百事哀’를 읊었다. 一首에서는 典故가 인용되었으나, 二首에서는 典故 없이 일상생활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遣悲懷(三)
閒坐悲君亦自悲, 百年都是幾多時.
鄧攸無子尋知命, 潘岳悼亡猶費詞.
同穴窅冥何所望, 他生緣會更難期.
惟將終夜長開眼, 報答平生未展眉.
*窅; 움펑눈 요, 멀리 바라보다. *眉; 눈썹 미.
한가히 앉아 그대 그리면서 나 자신을 슬퍼하네,
백년 세월은 도시 얼마나 되겠는가.
鄧攸처럼 자식이 없는 것은 내 운명인가,
潘岳처럼 도망시를 지어도 부질없는 글이겠지요.
같은 무덤 속에 함께 묻혀도 캄캄한 곳에서 무엇을 바랄까.
내세의 연분도 기약하기 어려우니.
앞으로 밤새도록 언제나 뜬 눈으로 지내며,
평생 근심하며 얼굴을 펴지 모한 당신께 보답하리다.
이 시를 통해 원진과 위씨 사이에는 혈육이 없음을 알 수 있다.
鄧攸는 西晉과 東晉에 걸쳐서 살았던 사람으로, 영가의 난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남으로 피난하며 먼저 죽은 동생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친자식을 버렸으나(舍子保姪), 끝내 자식을 보지 못했다는 고사를 인용했다.
潘岳은 潘安이라 부르는 西晉의 시인이다. 潘岳은 유명한 미남자로 외출할 때마다 도성의 부녀자들이 몰려들어 과일을 주어서 수레에 과일이 가득 찼다는 고사가 있다. (擲果盈車)라는 고사에서 인용했다. ‘長開眼’은, ‘鰥(홀아비환)魚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며 근심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한다는 전설 속의 민물고기’에서 유래한 말로, 元稹이 죽은 부인을 생각하면서 ‘눈을 뜨고 있겠다.’는 말이다. 즉 평생을 홀아비로 지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시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 시인이었다. 다만, 이 시는 ‘悼亡詩’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