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명시감상

장 맛 / 박목월

德川 2019. 7. 19. 06:21


장(醬) 맛


어둑한 얼굴로

어른들은 일만 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어린 것들은 자라지만

종일 햇볕 바른 양지쪽에

장독대만 환했다.

진정 즐거울 것도 없는

구질구질한 살림

진정 고무신짝을 끌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어린 것들은

보내지만

종일 장독대에는

햇볕만 환했다.

누구는 재미가 나서 사는 건가

누구는 낙(樂)을 바라고 사는 건가

살다 보니 사는 거지

그렁저렁 사는 거지.

그런 대로 해마다 장맛은

꿀보다 달다.

누가 알 건데,

그렁저렁 사는 대로 살맛도 씀씀하고

그렁저렁 사는 대로 아이들도 쓸모 있고

종일 햇볕 바른 장독대에

장맛은 꿀보다 달다.


박목월(1916~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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