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樂天(백낙천)
친구와 술을 사랑한 천재 白樂天
白樂天(본명,白居易)은 新樂府 운동을 주창하면서, 문학은 실생활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문학의 사회적 작용을 중시하였으며, 예술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文章合爲時而著, 詩歌合爲事而作’(문장은 시대에 맞게 지어야하고, 시가는 실제를 위해 창작 되어야한다.)면서 실질을 떠나 미사여구나 늘어놓는 문학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그의 별호, 醉飮先生으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친구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文學을 논하고 經文을 논하였던 중당을 대표했던 문인이고 정치가였다.
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
少時猶不憂生計, 老後誰能惜酒錢?
共把十千沽一斗, 相看七十缺三年.
閑征雅令窮經史, 醉聽淸吟勝管弦.
更待菊黃家醞熟, 共君一醉一陶然.
*醞; 술 빚을 온.
젊어서도 생계 걱정을 안 했거늘,
늙어서 누군들 어찌 술값을 아까워하랴?
우리 두 사람, 만 냥에 술 한말을 사서 마시는데,
서로 바라보니 칠십에서 삼년이 모자라네.
한가로이 술잔을 세어가며 經史를 논하고,
취해서 읊는 시를 들으니 풍악보다 좋구나.
국화 피고 담근 술이 익을 때 다시 만나기를 바라노니,
그대와 함께 또 취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夢得은 劉禹錫의 자이고, 劉禹錫과 白樂天은 동갑내기에다, 당대를 풍미하던 걸출한 시인이며 친구였다. 두 사람은 詩나 文章으로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수재들이었으며 시풍도 비슷하여 친구하기에 딱 좋았을 것이다. 이들은 元鎭과도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賦得古原草送別-고원초를 송별하는 詩題.
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賦得; 시제를 얻다. *離離; 풀이 무성한 모양. *萋萋;풀이 우거진 모양.
무성하게 자란 저 벌판의 풀,
해마다 한 번씩 죽었다가 살아난다.
들불에 타도 아니 없어지고,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난다.
멀리 뻗은 방초는 옛길을 덮었고,
맑게 갠 푸른 하늘빛 황성에 닿았다.
이제 떠나는 그대를 보니,
우거진 풀에도 이별의 정이 가득하다.
‘野火燒不盡’은 잡초의 원초적 생명력이다. ‘들풀의 생명력처럼 민초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春風吹又生!’ 봄바람이 불어오면 또 다시 살아난다. 이 구절은 단순히 자연의 이치를 설명한 구절 같지만, 哲理가 함축되어 있어 후세 사람들이 인용하고 또 인용하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구절이다.
이 시는 白居易가 16세에 지었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시는 이별을 겪은 시인의 경험이 아니라 순수한 창작이라고 하니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白居易는 16세에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이 시를 가지고 長安에 와서 著作郞이며 詩人이었던 顧況을 만나러 갔다. 顧況은 白居易의 명함을 보고서, “장안은 쌀(白) 값이 비싸서 살(居)기가 쉽지 않다(不易).”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이런 재주를 가졌으면 살기가 어렵지 않다.(有才如此, 居易不難)이라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들풀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 이시의 앞 구절은 중국 농민들의 봉기, 군대의 반란, 종교적 소요, 왕조의 전복을 위한 선동 등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
여기서 파생된 글귀들을 보면, “星星之火可以燎原, 작은 불씨 하나가 넓은 들판을 태울 수 있다.” ‘星星之火’는 부싯돌이 부디 쳐서 일어나는 작은 불씨를 의미한다. “燎原烈火, 불타는 넓은 들판의 세찬 불길”, 등등의 문구를 만들어서 만초들을 선동하는 자극적인 문구를 파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