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한시감상

白樂天(백낙천)

德川 2019. 12. 2. 13:58

친구와 술을 사랑한 천재 白樂天




白樂天(본명,白居易)新樂府 운동을 주창하면서, 문학은 실생활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문학의 사회적 작용을 중시하였으며, 예술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文章合爲時而著, 詩歌合爲事而作(문장은 시대에 맞게 지어야하고, 시가는 실제를 위해 창작 되어야한다.)면서 실질을 떠나 미사여구나 늘어놓는 문학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그의 별호, 醉飮先生으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친구를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文學을 논하고 經文을 논하였던 중당을 대표했던 문인이고 정치가였다.




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

少時猶不憂生計, 老後誰能惜酒錢?

共把十千沽一斗, 相看七十缺三年.

閑征雅令窮經史, 醉聽淸吟勝管弦.

更待菊黃家醞熟, 共君一醉一陶然.

*; 술 빚을 온.






젊어서도 생계 걱정을 안 했거늘,

늙어서 누군들 어찌 술값을 아까워하랴?

우리 두 사람, 만 냥에 술 한말을 사서 마시는데,

서로 바라보니 칠십에서 삼년이 모자라네.

한가로이 술잔을 세어가며 經史를 논하고,

취해서 읊는 시를 들으니 풍악보다 좋구나.

국화 피고 담근 술이 익을 때 다시 만나기를 바라노니,

그대와 함께 또 취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夢得劉禹錫의 자이고, 劉禹錫白樂天은 동갑내기에다, 당대를 풍미하던 걸출한 시인이며 친구였다. 두 사람은 文章으로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수재들이었으며 시풍도 비슷하여 친구하기에 딱 좋았을 것이다. 이들은 元鎭과도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賦得古原草送別-고원초를 송별하는 詩題.

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

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

*賦得; 시제를 얻다. *離離; 풀이 무성한 모양. *萋萋;풀이 우거진 모양.




무성하게 자란 저 벌판의 풀,

해마다 한 번씩 죽었다가 살아난다.

들불에 타도 아니 없어지고,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난다.

멀리 뻗은 방초는 옛길을 덮었고,

맑게 갠 푸른 하늘빛 황성에 닿았다.

이제 떠나는 그대를 보니,

우거진 풀에도 이별의 정이 가득하다.



野火燒不盡은 잡초의 원초적 생명력이다. ‘들풀의 생명력처럼 민초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春風吹又生!’ 봄바람이 불어오면 또 다시 살아난다. 이 구절은 단순히 자연의 이치를 설명한 구절 같지만, 哲理가 함축되어 있어 후세 사람들이 인용하고 또 인용하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구절이다.

이 시는 白居易16세에 지었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시는 이별을 겪은 시인의 경험이 아니라 순수한 창작이라고 하니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白居易16세에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서 이 시를 가지고 長安에 와서 著作郞이며 詩人이었던 顧況을 만나러 갔다. 顧況白居易의 명함을 보고서, “장안은 쌀() 값이 비싸서 살()기가 쉽지 않다(不易).”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이런 재주를 가졌으면 살기가 어렵지 않다.(有才如此, 居易不難)이라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들풀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한 이시의 앞 구절은 중국 농민들의 봉기, 군대의 반란, 종교적 소요, 왕조의 전복을 위한 선동 등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

여기서 파생된 글귀들을 보면, “星星之火可以燎原, 작은 불씨 하나가 넓은 들판을 태울 수 있다.” ‘星星之火는 부싯돌이 부디 쳐서 일어나는 작은 불씨를 의미한다. “燎原烈火, 불타는 넓은 들판의 세찬 불길”, 등등의 문구를 만들어서 만초들을 선동하는 자극적인 문구를 파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