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居易(백거이)
白居易- 樂天, 香山居士
白居易(772~846)의 자는 樂天이고, 호는 香山居士 또는 醉飮先生으로 불린다. 시인으로서의 유명 도를 따지자면, 李白이나 杜甫, 王維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시인이다.
白居易는 벼슬자리도 괜찮았고, 家産도 풍부하여 집에 좋은 술을 빚어 놓고 어린 歌妓나 奴婢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당시 상류 명사였던 裵度, 劉禹錫, 元稹 등과 어울렸다.
白居易 집의 樊素라는 歌妓는 노래를 잘 불렀고, 小蠻이라는 歌妓는 춤에 능했다. 그래서 백거이는 ‘櫻桃樊素口(앵도는 번소의 입), 楊柳小蠻腰(버들가지는 소만의 허리)’라고 주위에 자랑했다.
楊柳枝
一樹春風萬萬枝, 嫩如金色軟於絲.
永豊西角荒園裏, 盡日無人屬阿誰.
*嫩; 어릴 눈, 어리다, 예쁘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의 수만 가지,
연하디 연한 노란색은 명주실보다 부드럽다.
영풍의 서쪽 황량한 뜰 안에,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데 누구에게 의지하나?
이 시는 예쁘고 날씬하여 사랑을 받던 歌妓 小蠻의 허리나 자태도 이제 나이가 드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아쉬움을 노래한 것이다. 唐 宣宗 재위 중 궁중에서 가기들이 이 시를 노래로 부르자, 宣宗이 ‘누구의 시이며 영풍이 어디냐’고 물었다. 옆에서 ‘백거이의 시이며, 영풍은 낙양의 한 마을 이름’이라고 하자, 선종은 영풍에 가서 그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궁중에 심으라고 분부했다는 설이 있다.
白樂天의 酒色에 관한 人生觀
‘酒色錢財人人愛(술과 여색, 돈과 재물은 사람마다 좋아하지만’, ‘酒色傷人酒色誤事(술과 여색은 사람을 다치게도 하고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또한 아무리 덩치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酒腸寬似海(술이 들어 갈 창자는 바다만큼이나 넓고) 色膽大如天(여색을 탐하는 마음은 하늘만큼 크다.). 그리고 酒杯裏淹死的人(술잔에 빠져 죽은 사람은), 比大海的還要多(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많다).
이렇다고 술을 안 마실까? 酒逢知己千杯少(술이 지기를 마주하면 천 잔도 많지 않고), 今夕有酒今夕醉(오늘 저녁에 술이 있다면 오늘 취해야 하고), 明日愁來明日愁(내일 걱정거리는 내일 걱정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香山居士 白樂天이 품고 있던 음주관이다.
白居易는 특히 長詩에 능했고 中唐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지금까지 그의 시 3000여 수가 전한다. 특히 長恨歌(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담은 시)와 琵琶行(백거이가 일련의 사회비판의 시를 발표하면서 중앙에서 쫓겨나 당시 天涯라고 일컫던 구강에 좌천되어, 어느 가를 저녁 우연히 들려오는 비파 소리에 느낀 바 있어 단숨에 써내려 간 장시) 등이 유명하다.
大林寺桃花
人間四月芳菲盡, 山寺桃花始盛開.
長恨春歸無覓處, 不知轉入此中來.
*菲; 엷을 비 *覓; 찾을 멱, 구하다.
사월이 되니 인간 세상의 꽃은 다 졌는데,
산 속 절간의 복사꽃은 이제 한창일세.
봄이 간 곳을 찾을 길 없어 늘 서운했는데,
여기 산 속에 슬쩍 숨어 있는 줄을 몰랐네.
사람들이 사는 평지와 산 속의 풍광이 이렇게 다를 줄을 시인도 몰랐나보다. 이 시는 백거이가 원화 12년(817) 46세 때 江州司馬로 근무할 즈음, 廬山에 있는 上大林寺에서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