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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江上雜詩(강상잡시)-李喜之(이희지)

德川 2015. 7. 5. 15:52

 

江上雜詩(강상잡시)-李喜之(이희지)

 

門外春江綠染衣  乘流一棹自忘歸

문외춘강록염의  승류일도자망귀

 

白鷗未必閒如我  盡日窺魚傍釣磯

백구미필한여아  진일규어방조기

 

水舍鷄鳴夜向晨  柳梢風動月橫津

수사계명야향신  유초풍동월횡진  

漁家只在江南北  一色蘆花不見人

어가지재강남북  일색로화불견인

 

 

문밖 봄강은 옷에 푸른 물 들이고

물결 탄 한 척 배 스스로 돌아갈길 잊었네.

백구는 반드시 나와같이 한가하지는 않아

종일 낚시터 곁에서 물고기 엿보네

강마을 닭이 우니 밤은 새벽으로 향하고

버들가지에 바람 이니 달은 나루를 비꼈네

고기잡이 집은 다만 강 남북에 있는데

갈대꽃 한빛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네.

 

 

 

李喜之(이희지 1681년(숙종 7) ~ 1722년(경종 2)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복(士復), 호는 응재(凝齋). 아버지는 판서 사명(師命)이며, 이명(頤命)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 경종이 병이 잦고 세자가 없어서 노론의 김창집(金昌集)·이이명·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 4대신이 연잉군(延礽君:뒤에 영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여 대리청정(代理聽政)하게 되었다. 이 때 그는 노론에 속한 성균관 유생이었는데 이몽인(李夢寅)의 상소로 전라도 장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노론 4대신의 처사에 반기를 든 소론의 유봉휘(柳鳳輝)가 왕세제책봉의 불가함을 상소하고, 김일경(金一鏡) 등은 목호룡(睦虎龍)으로 하여금 고변하게 하였는데, 이희지 등이 경종에게 약물을 먹여 시해할 목적으로 궁녀에게 금전을 주었으며 왕을 비방하는 노래를 지었다고 무고하여 큰 옥사가 일어났다.

이 무고로 이희지·이기지(李器之 : 頤命의 아들)·김성행(金省行 : 昌業의 손자) 등 60여명이 투옥되었는데, 그는 형을 여덟 차례나 받고 드디어 장하(杖下)에서 죽었다. 영조 때 신원(伸寃 :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출처 : 붓장난
글쓴이 : 덕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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