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무화과 - 김지하
무화과
- 김지하
돌담 기댄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 해 설 >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 연대의 의미가 담겨 있음, 여기서 연대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 시련과 역경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암울한 상황. '잿빛 하늘'과 '무화과'는 어두운 이미지로 시대적 상황을 암시
이봐
↪ 대화체적 방식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 좋은 시절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 위로의 의미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 꽃 시절이 없었던 친구에게 열매 속에서 속꽃(꽃 시절과 의미가 유사함)이 핀다는 말로 위로하고 있음
그게 무화과 아닌가
↪ '무화과'는 한 인간의 내면적 성숙과 자기 성찰을 환기하는 상징적 소재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에게 없는 '꽃 시절'을 대신하는 말로 위로하기 위한 소재이기도 하다.
어떤가
↪ 두 '친구'는 각각 한탄과 위로의 두 심리를 대변하고 있으며, '무화과'의 이미지를 통해 한탄과 위로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있다.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 두 친구가 살아야 하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
비틀거리며 걷는다
↪ 현실이 순탄치 않고 힘겨울 것이라는 점을 암시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 두 친구가 희망하는 세상과 대조되는 어두운 세상을 영악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의미하는 말로 두 친구의 앞날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음